비트겐슈타인과 영화 컨택트arrival(네 인생의 이야기), 그리고 컴퓨터 언어
(개인적인 생각정리글이며, 오류가 있을시 둥글게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야금야금 오탈자 수정중입니다)
2016년 <컨택트arrival>라는 영화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적이 있다. 이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는데, 단지 '당시 부국제에서 상영하는 영화 중 화제작으로 많은 사람들이 추천을 해주고 있다' 와 '제레미 레너라는 친숙한 배우가 나온다'가 큰 이유가 되어 봤었다. 큰 기대를 가지지 않고 봤었는데, 이 때 이 영화를 만나지 못했다면 정말 많이 후회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너무 재미있게 봤다.
컨택트는 SF장르물 영화로 단순히 외계인이 지구로 처들어오거나 지구인이 우주를 개척하러 떠나는 식의 내용이 아니다. 별안간 지구에 떨어진 이세계의 생물체와 서로 다른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한계를 극복해나가며 서로 소통해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는 영화다. 영화가 너무 재미있어서 원작소설인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도 읽어봤었는데, 영화에선 언어학자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있다면, 원작 소설은 물리학적인 관점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영화는 좀 더 보편적인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지 싶다)
영화에서 다뤄지는 지구인과 외계인의 언어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지구인의 언어는 순차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된다면 외계인의 언어는 과거,현재,미래를 동시다발적으로 담은, 시작과 끝이라는 것이 없는 언어라는 점이다. 언어가 가진 생각, 또는 생각에 따른 언어를 기반으로 사고하고 소통하기 때문에 지구인의 시간의 흐름 역시 순차적으로 흘러 간다. 반면에 외계인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소통체계를 가지고 이를 바탕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시간의 흐름을 한번에 인지한다. 즉, 언어에서 과거현재미래를 한번에 담는 것 처럼 생각 또한 과거현재미래가 한번에 인지되고 그렇게 사고한다는 것이다. 생김새 역시 앞,뒤를 구분할 수 없는 완벽한 대칭형태를 가지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 책에서 언급되는 물리학적 서술에 관한 내용은 이 글의 큰 흐름과는 연관성이 크게 없는 듯하여 접은글로 추가했다.
책과 영화에서 근본적으로 담고 있는 큰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수행하는 삶'이다. 이러한 새로운 사상을 외계인의 사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언어와 물리학의 관점에서 설명해 나가고 있다. 그렇기에 근본적인 주제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에서 언급되는 '페르마의 최소시간의 원리'에 관한 이해가 함께 이루어져야 훨씬 수월하게 많은 것들이 받아들여진다.
여기서 말하는 페르마의 최소시간의 원리는 목적론적인 시각을 설명하고 있다. 빛이 물을 만나 굴절되는 것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물이라는 장애물을 만나 굴절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이므로 굴절또한 이미 고려한 사항이었다는 것이다.

위의 그림으로 다시 설명해 보자면
A에서 출발해 C로 가려고 했는데 물을 만나 굴절되면서 C가 아닌 B가 도착했다
라는 개념이 아니라
B에 도착하는 가장 빠른 시작점이 A이기때문에 A에서 출발해 굴절을 겪고 B에 도착했다
라는 개념이다.
영화에서 본 내용만을 받아들여 정리한다면 결국 언어와 생각은 나의 존재와도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지구인은 선형적으로 사고하고 말하기 때문에 생각과 생김새 모두 다 그에 맞게 형성되어있는 것이고, 외계인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생김새가 그러한 것이고, 문자언어역시 시작과 끝을 알수없는 형태로 되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적 사상의 시작점은 어쩌면 비트겐슈타인의 전기철학으로 거슬러간다고 생각됐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전기철학의 핵심인 언어-그림 이론을 통해 사실의 논리적 그림이 생각이며, 언어는 세계에 존재하는 사실을 그림처럼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세계는 나뉘어 지지 않는 가장 작은 단계인 원자사실(단순사실)의 연결, 연쇄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상을 하나하나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 이름이다.
이름은 하나의 원자 사실들인 대상을 지시하는 것이고, 이 단순 사실들을 나열한 것인 복합명제가 된다.
복합명제는 세계에서의 '사실'에 대응하며, 복합명제들로 이루어져 전체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 '언어'이다.
즉, '세계'와 대응하는 것이 '언어'인 것이다.
내가 보지 못한 상황을 단순히 구체적인 말을 설명을 통해 생각하여 그려낼 수 있듯이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통해서 세계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즉 언어가 그림처럼 세계를 그려나가며 보여줄 수 있다고 하여 언어-그림 이론인 것이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에 맞춰 단순 사실들을 생각해나가고 그것을 모아 세계를 그려낼 수 있다. 아까 컨택트를 다시 빗대어 보자면 지구인은 선형적인 언어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생각또한 선형적으로 하나하나씩 쌓여가는 느낌으로 말을 뱉고 사고도 그렇게 한다. 반면 외계인인 동시다발적인 언어구조이므로 과거현재미래 구분없이 세계를 그려나가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국 이 두 가지를 관통하는 것은 내가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생각하거나, 생각하는 것에 따라 언어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영화와 책을 통해 이러한 개념을 이미 알고 있긴 했지만 이를 설명하는 관련 이론이 있는지는 몰랐다. 이미 꽤 오래전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철학자를 통해 이를 서술하는 이론이 있다는 것이 정말 흥미로웠고, 세상엔 정말 많은 생각들이 이미 존재해왔구나가 다시금 느껴져서 재미있었다.
외국어를 배우다보면 한국어와 외국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국가별로 다른 언어 사상을 가지고 있고 표현하는 방식 역시 정말 다양하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정말 재미있게도 1:1로 대응하여 번역할 수 없는 단어들또한 왕왕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말에서 아주 오묘한 말들, '정情'을 영어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 오랜 세월 쌓여져 온 문화적 차이점을 기반으로 하여 언어가 형성되고 발전되었기 때문에 나라별로 다른 체계를 형성하고 있어 그 미묘한 차이점을 서술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컴퓨터의 탄생과 함께 컴퓨터라는 물체와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진 컴퓨터 언어 역시 이러한 기존의 차이점을 극복하기위해 발전해왔다. 그리고 현대의 마지막 종착점이 객체지향언어일 것이다. 아직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개념이 서질 않아 더이상의 서술을 하기는 어렵지만, 잠깐의 강의를 통해 들었듯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기반으로 컴퓨터 언어를 만들어 냈기 때문에 이러한 논의점들을 고려하고 보완해나가며 발전되었다.
처음에 이 분야공부를 시작할 때 정말 가벼운 말로 외국어를 접하고 배워왔기 때문에 새로운 또다른 언어를 배워나가는 것이 자신있다, 수월할것 같다 등의 말을 했었다. 하지만 공부해 나갈수록 이렇게 단순하게 표현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고 있다. 단순히 인간과의 소통이 아니라 컴퓨터라는 물체와 소통해야하는 또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과거 외국어를 배울 때 한국어를 뒤돌아 생각해 보게 되는 지점들이 정말 많았다. 우리나라의 언어로는 어떻게 말하더라? 어떻게 서술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나지? 등의 고민들을 정말 많이 했었다. 이와 유사하게 지금 컴퓨터 언어를 배우며 도리어 사람의 언어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사람의 언어는 이러한데 컴퓨터의 언어체계에서는 어떻게 말해야 이것이 대응하는것이지? 라는 고민이 많이 든다.
역시 어떤 분야든 공부는 갈길이 멀고도 많다.
여담이지만 테드 창의 작품들은 작품집을 기준으로 '당신 인생의 이야기' 와 '숨'이 있는데 2권 다 정말 재밌다. sf에 흥미가 있다면 두권다 보는 것을 추천한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담긴 소설들은 우주적이고 신화적인 성격이 강하다. 반면에 숨은 좀 더 현대적이다.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소설 '나무'에서 나온 sf적 상상이 2020년대에 접어들며 현실화 된 것이 많은데, '숨'에서는 이처럼 앞으로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법한 과학적 상상을 담고 있는 소설들이 많다. 나는 개인적으로 '나무'의 현대판 버전같이 여기고 있다.
✔️ 참고 자료
정제된 책의 글이나 논문을 읽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 정도의 시간투자는 지금에선 아닌 것 같아서 영상보며 정리했다.
5분 뚝딱 철학 / 비트겐슈타인 : 논리철학논고
비트겐슈타인의 전기철학을 핵심만 잘 설명해주셔서 많은 도움이 됐다.
https://www.youtube.com/watch?v=wNyv84wu_xM
지혜의 빛 : 인문학의 숲 / 비트겐슈타인 :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침묵 - 쉽고 간결한 현대철학
추가 참고자료로 봤다.
https://www.youtube.com/watch?v=UlFrm5qgv98
박문호 TV / 언어와 생각의 관계성
아직 보지는 못했는데 위의 영상에서 참고영상으로 언급되어 있어서 링크만 첨부
https://www.youtube.com/watch?v=bfCwSX4T-pM
겨울서점 / 미래를 기억한다면, 그대로 살게 될까 [테드 창, 네 인생의 이야기]
꽤 예전에 본 영상인데, 내용 정리할때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4va_oRhmPvw